2013년 4월 1일 월요일

2013.1.31 Jagten(더 헌트) 감상 후기

(본 사진의 출처는 http://forthcoming-movies.blogspot.com이며
저작권 역시 동 사이트에 귀속됩니다.)


  보드게임 관련 내용으로 블로그를 채우려고 했는데, 좀 허전해서 영화 감상도 추가해 봤습니다. 뭐, 보드게임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니까요. 올해 본 두 번째 영화 [더 헌트(원제:Jagten)]로 영화 감상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더 헌트]는 제가 살면서 처음 본 덴마크 영화입니다. 나름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그래도 북구 영화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주연 배우인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이야 킹 아더의 트리스탄, 007:카지노 로얄의 르쉬프, 그리고 삼총사 3D의 로슈포르 역으로 그나마 관심 있던 배우지만요. 특히 카지노 로얄에서 피눈물 흘리던 악당 연기는 인상깊었습니다. 토마스 빈터베르크(Thomas Vinterberg) 감독 역시 배우와 마찬가지로 덴마크 출신 감독인데요, 이 영화를 통해 다른 작품도 관심이 가게 되었네요.

영화의 내용은 제법 무겁습니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요. 전문적인 해석이야 정성일 평론가가 세심하게 다뤘으니, 자세한 해석을 원하시는 분은 그 평론을 보시면 되실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제 깜냥 안에서 얘기해볼께요. 그리고 혹시 영화를 못보신 분들께는 영화의 얼개가 다소 펼쳐질 우려가 있으므로, 감안하셔서 읽으실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본 사진의 출처는 http://www.frenetic.ch이며 저작권 역시 동 사이트에 귀속됩니다.)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은 북유럽의 한 마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1월입니다. 주인공인 루카스는 전직 학교 선생으로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집 근처 유치원에서 보육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양반은 원래 직장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이혼남에다가 아들의 면접교섭권을 두고 전처와 다투고 있는 중이지요. 그래도 고향에서 또래들과 즐겁게 지내고, 지금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는 성실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또래 중에서 절친한 동무 테오의 딸 클라라 역시 같은 유치원에서 다니며 루카스와 점점 친해집니다. 근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의혹이 점차 확증을 얻게 되면서 루카스는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유치원에서 잘리고, 아들의 면접교섭권 획득도 실패하구요. 게다가 자신이 그동안 속해 있던 지역 공동체, 또래 집단에서 완전히 배제당하고, 따돌림 당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렇게 직장도 잃고, 친구도 잃은 데다가, 고대하던 아들도 못보게 된 루카스는 반 폐인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성추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구속될 위기에까지 빠지게 되는데요. 거기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아들의 갑작스런 방문입니다. 아들 마쿠스는 이 마을에서 유이하게 루카스의 결백함을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같이 살을 맞대던 애인마저 루카스의 혐의를 의심하게 되서 쫓아낸 상황에서 마쿠스는 루카스가 유일하게 같이 지낼 사람이지요.

그런데 아들을 만난 것도 잠시, 루카스는 경찰에 의해 구속되고 마는데요. 그때부터 영화의 시점은 마쿠스에 의해 진행됩니다. 마쿠스는 루카스의 또래집단과 테오를 찾아가 부친의 결백을 주장하고, 클라라에게 왜 거짓말을 하냐고 따집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차디찬 반응과 구타 뿐이었지요. 그런 마쿠스를 받아주는 건, 마을에서 유이하게 루카스의 무죄를 믿는 마쿠스의 대부(代父) 브룬 뿐이었지요.

 결국 루카스의 혐의가 어느 정도 풀려서, 예심에서 방면됩니다. 그래서 부자는 다시금 상봉하게 되지요.


(본 사진의 출처는 http://kalafudra.wordpress.com이며 저작권 역시 동 사이트에 귀속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질시와 냉대는 여전했고, 루카스는 올해 성탄절을 그런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맞게 됩니다. 과연 루카스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결국 성탄절 미사와 테오의 각성을 통해서 루카스는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게 되지만, 영화 결말을 보면 전혀 개운치가 않습니다. 아니, 사실 보는 내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지요.

 이 영화는 어느 면에서는 한국영화 도가니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도가니는 아동 성폭행이라는 소재를 두고 인면수심의 학원 권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개인들의 싸움을 다루고 있는데요. 더 헌트는 아동 성폭행이라는 소재는 같지만, 정 반대의 내용입니다. 소아성애자라는 억울한 낙인이 찍힌 개인과 그를 둘러싼 마을 구성원과 또래 집단과의 대립이 주 내용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도가니와 똑같이 이 영화에서는 반전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클라라가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게 되는 계기도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루카스가 정상적인 남성이라는 것도 그의 애인을 통해 드러나지요.

 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제대로 된 혐의를 밝히는 것보다 그같은 낙인을 지우는 게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일단 인간이라는 게 대상을 그렇게 규정하고 나면, 쉽게 생각을 바꾸기 힘든 동물이니까요. 특히 성폭행 혐의자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리고 평론에서는 가해자(?) 루카스를 권력의 강자인 성인 남성으로, 그리고 피해자(?) 클라라를 약자인 어린 여자애로 설정함으로써 묘한 도치 효과를 얻었다고 하던데요. 전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성인 남성이라는 것이야말로 더 약할 수 없는 절대 약자로 봅니다. 성인 남성이라는 게, 현대 사회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다고 일반적으로 보지요. 하지만 성추행 혐의가 걸리는 순간, 성인 남성이라는 위치는 매우 취약해지지요. 오히려 그렇기에 루카스의 아들 마쿠스가 게이로 설정된 지도 모르겠네요.

게다가 영화에서 루카스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주역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여성들이지요. 그래서 이 영화에 반여성주의의 테제가 붙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성일 씨의 말처럼, 이 여자들은 페미니즘의 입장에서의 여성이 아니라 가부장제 아래 있는 여성이라는 걸 감안해야겠지요.

 전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나 아이가 강자인 성인 남성을 옭아매고, 곤경에 빠트리는 것을 통해서 주홍색 낙인과 소외의 문제를 더 부각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담담하게 서술되는 영화의 얼개가 더욱 효과적으로 충격을 전달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한 번 낙인이 찍힌 루카스는 다시는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되지요. 아무리 아이라 하더라도, 한 인간의 악의가 다른 한 인간을 얼마나 부숴버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루카스는 아무리 복수하고 싶어도 원한을 풀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그 대상이 어린 아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 하나 파멸시키기도 참 쉬울 것 같네요. 특히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거나, 선행을 많이 하는 이라면 더더욱 쉽겠지요. 적당히 구슬려서, 소문만 잘 퍼트리면 되니까요. 그래서 루카스는 미사에서 그렇게 뒤돌아 봤나 봅니다. 당신은 인간의 악의와 집단적 오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냐 묻고 싶어서요.



(본 사진의 출처는 http://www.nordiskfilm.dk이며 저작권 역시 동 사이트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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