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본격적으로 "십자군의 기치 아래(Im Zeichen des Kreuzes)"의 배경이 되는
1차 십자군 원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1차 십자군 원정은 기본적으로 동방과 성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교황청의 야심과 그를 통해 구원을 얻고 이득을 취하려는 제후들과 기사들의 욕구가 부합되어 이루어졌습니다. 비잔티움 제국과 예루살렘에 기독교의 교세를 확장시키고 싶어한 당시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 이루어진 종교회의에서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Deus lo volt)!"라는 이유로 성전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던 제후 및 기사들은 십자군 원정을 가면 죄가 사해진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이지요.
물론 원정을 통해 부가로 얻어지는 토지와 보물들은 추가 보너스로 그들의 원정 욕구를 더욱 부추겼을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쌍방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제후들은 사재를 털어서 기사와 용병들을 고용하고 원정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1년 후인 1096년 본격적으로 1차 십자군 원정이 이루어 지는데요. 그 원정에 참가한 주요 제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일 대표팀 : 고드프루아 부이용(Godefroy de Bouillon), 근거지는 지금의 벨기에 남부.
이탈리아 대표팀 : 보에몬도 일 타란토(Boemondo di Taranto), 근거지는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대표팀 : 레몽 4세 툴루즈(Raymond IV de Toulouse), 근거지는 프랑스 남부 툴루즈.
영국 대표팀 : 로베르 2세 드 노르망디(Robert II de Normandie), 근거지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 노르웨이 대표팀 : 시굴 1세, 십자군(Sigurd I Jorsalfare), 근거지는 노르웨이
여기서 시굴 1세를 제외한 나머지 제후들은 1096년 원정이 시작할 때부터 참여했고, 시굴 1세는 뒤늦게 1107년에 참가합니다. 1차 십자군 원정의 주력을 이루는 4명의 제후들은 일단 자신의 영지에서 1차 목적지인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집결합니다. 거기서 제후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게 충성 서약을 하고, 성지까지의 길잡이와 보급 제공을 약속받습니다. 그로부터 몇 차례의 전투를 거쳐 결국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정복한 여러 도시에 자신의 왕국이나 공국(공작이 다스리는 나라), 백국(백작이 다스리는 나라)을 세웁니다. 이는 이슬람 세력이 서로 분열되어 각개격파당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 후 고드프루아 부이용의 동생 보두앵 1세가 예루살렘 왕국을 이어받고 그 왕국은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보듯이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합니다.
(위 사진의 출처는 http://www.boardgamegeek.com이며 저작권 역시 동 사이트에 귀속됩니다.)
그럼 "십자군의 기치 아래"에서 활약하는 5명의 軍主들의 대략적인 여정을 각각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살펴볼 인물은 가장 먼저 소개된 고드프루아 부이용입니다. 성지 탈환이라는 이상에 가장 헌신했던 인물로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유일한 독일쪽 제후입니다. 그의 근거지는 벨기에 남부 지역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하고, 그 지역의 용병들을 모았습니다. 유명세는 조금 떨어질 지라도, 그는 과묵하고 경건한 인물로 십자군 내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으므로 예루살렘 탈환 후에 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으로 선출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위를 사양하고, 겸손하게 "성묘의 수호자"라고 자칭했습니다. 그가 요절한 후, 그의 동생 보두앵 1세가 뒤를 이어 예루살렘 왕국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
다음으로 보에몬도 일 타란토를 보도록 하죠. 그냥 생김새만 봐도 위의 고드프루아 부이용과는 달리 사악하고 음험한 기운이 넘치는군요. 그는 본래 바이킹의 후예 노르만계인데, 이탈리아 남부 에 정착했습니다. 이탈리이 반도는 장화 모양을 연상시키는데, 그 중 발굽 모양의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지요. 본래 뛰어난 용병인 부친을 이어받아 전투를 지휘하는 재능은 탁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바이킹의 나쁜 점만 모두 물려받은 보에몬도는 가장 세속적인 목적으로 십자군에 가담한 인물입니다. 본래 목적인 예루살렘을 망각하고, 안티오키아를 정복하자 그 도시에 눌러앉아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웁니다. 그리고 후에 자신의 조카에게 공국마저 빼았기고, 이슬람 세력에게 붙잡혀 경매에까지 내놓이는 등 여러 추태를 보이다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참하고 곤궁하게 죽고 맙니다. 그 경매라는게 아주 가관인데, 총 3명이 입찰했다고 합니다. 먼저 이슬람 소국의 술탄, 그리고 그의 오랜 원수인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마지막으로 보에몬도 자신이 입찰했다고 합니다.
결국 보에몬도는 경매에서는 이겼지만, 전 재산을 쏟아부은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 비참하게 죽은 거지요...
3번째 주역은 프랑스의 레몽 4세 드 툴루즈입니다. 이 분은 인상이 상당히 후덕해 보이는데, 실제로도 십자군 내에서 가장 부유한 제후였습니다. 그 덕분에 원정군 내에서 그의 부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재산 덕분에 십자군 내에서 유일하게 비잔티움 제국 황제에게 충성 서약을 맺을 필요가 없는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러한 그의 부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여신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안티오키아 공성전에서는 보에몬도에게 밀려 도시를 차지하지 못했고,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예루살렘 왕국도 고드프루아에게 뺐기고 맙니다. 하지만 이같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트리폴리 백국을 세웠으며, 그의 후손들은 안티오키아 공국이나 예루살렘 왕국보다 더 튼튼한 십자군 공동체를 지켜나가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로베르 2세 드 노르망디를 보겠습니다. 이름만 들어보면 프랑스 사람같지만, 그는 영국 왕 기욤의 큰 형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노르망디 공작 기욤 1세가 영국을 점령해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그의 차남 기욤 2세에게는 영국 왕위를 물려줬고, 로베르 2세에게는 노르망디 공국을 주었지요. 따지고 보면 3차 십자군 원정의 주역 리처드 1세의 큰 할아버지 뻘 되는 인물이기에, 어쩌면 리처드 1세도 큰 할아버지의 성공에 감명을 받아 십자군에 참가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로베르 1세는 생애 처음으로 군사적 성공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원정의 성공에 고무된 그가 유럽으로 돌아오자, 그의 불운도 따라오게 됩니다. 결국 그는 리처드 1세의 할아버지이자 그의 막내 동생인 헨리 1세에게 패한 이후 카디프의 성에 감금되어 남은 생을 보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 볼 인물은 시굴 1세, 십자군입니다. 그는 위의 4명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인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유럽을 뒤흔든 바이킹의 모국 노르웨이의 왕이었고, 십자군 무리 속에서 유일한 왕입니다. 또한 참여한 軍主들 중에서 가장 젊었으며 그가 택한 원정로 역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모한 루트였습니다. 보통의 십자군 제후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헝가리, 알바니아 방면으로 나아간 후, 콘스탄티노플을 경유하여 소아시아를 지나 예루살렘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시굴 1세가 이끄는 이 바이킹들은 육로가 아닌 바닷길을 택했는데요, 장장 3년의 세월이 걸린 대여정이었습니다. 우선 북해로 영국을 통과하여,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에 이릅니다. 그리고 나서 시칠리아를 지나 쭉 동진하여 예루살렘에 다다랐는데, 정작 원정이 끝나고 나자 타고온 배를 팔고는 육로를 통해 귀국합니다. 흑해 쪽으로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을 지나 노르웨이로 돌아갔는데, 정작 원정 자체보다 오히려 가는 여정이 더 흥미진진하네요. 뭔가 주객과 본말이 전도된 것 같네요...
이렇게 해서 1차 십자군의 주요한 배역들은 모두 살펴 본 것 같네요. 이렇게 국적도 다르고 원정의 과정도 제각각인 다양한 주인공들이 이끌어 가는 1차 십자군 원정은 보드게임으로 즐기기엔 최적의 배경입니다. 그리고 퀸 게임즈社의 "십자군의 기치 아래"는 이보다 더 십자군 원정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1차 십자군에서 각 제후들의 여정을 잘 재현해 냈습니다.
고드프루아 부이용처럼 신실하게 기도와 전투를 반복하며 예루살렘을 탈환할 지, 보에몬도처럼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탐욕적인 십자군이 될 지는 전적으로 이 게임을 즐기는 여러분들 자신의 몫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약탈과 정복을 반복하는 플레이가 좀 더 십자군의 본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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