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0일 토요일

2015.5.9 Merchants & Marauders(상인과 약탈자) at 김포 모임

카리브 해와 해적은 항상 저를 설레게 하는 소재였지요.


 강서 모임에서 [포지 워]를 마치고 [Merchants & Marauders(상인과 약탈자)]를 2시간 정도 돌렸습니다. 그런데 [포지 워]를 4시간 반 정도 한 여파에다가, [상인과 약탈자]의 잔룰도 은근히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접었지요. 그러고 나서 김포 반야님 댁에 와서 다시 해보기로 했습니다. 반야님, 심군님, 저 이렇게 셋이서 진행했는데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첫 게임은 테스트 삼은 것 같아서 모임 멤버들한테 조금 미안한 감이 드네요.


대항해시대를 보드게임으로 즐기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게임


 이 게임은 [문화의 충돌]의 디자이너 Christian Marcussen의 첫 작품입니다. 2010년에 나왔는데, 시드 마이어의 PC게임 "Pirates(해적들)"을 보드게임으로 만든 느낌입니다. 물론 FFG처럼 정식으로 판권을 받고 만든 건 아니니까, 그렇게 이름을 붙이진 못했지만 말이죠. 이 작가는 아직까지 게임을 2개밖에 만들진 않았지만, 다분히 시드 마이어의 게임을 보드게임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여요. [문화의 충돌] 할 때도 그런 기분을 느꼈었는데, [상인과 약탈자]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항구나 도시를 공격하는 옵션을 빼고는 거의 다 구현해 냈습니다.


[드레드 플릿]의 플레이 매트는 바다 배경 게임에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 게임에서 우리는 2가지 역할을 임의대로 도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물품을 선적하고 다른 항구에 내다 파는 상인과 상인 마커 및 다른 상인 플레이어들을 약탈하는 약탈자가 그것입니다. 물론 NPC로 해적과 해군도 있어서, 해적은 상인을 공격하고 해군은 약탈자를 소탕합니다. 해적은 국적이 없지만, 해군·상인 및 약탈자는 각각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카리브 해를 주름잡았던 에스파냐나 영국,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가 고증에 맞게 각 해역에 존재하고 항구들도 그에 맞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세련된 미니어처들과 각종 구성물들이 게임의 몰입감을 더욱 높여주네요.


 이 게임은 일단 선장 카드를 뽑아서 자신의 세력을 이끌 선장을 먼저 비공개로 결정합니다. 그러고 나서 배를 선택하는데, 초반에는 자그마한 배들밖에 고를 수 없습니다. 배들은 크기에 따라서 소형, 대형으로 나뉘고, 기능에 따라서 기동성이 있는 배들과 수송량 및 함포가 많은 배로 나뉩니다. 전자의 분류가 슬루프, 플루트 / 프리깃, 갤리온이고, 후자의 분류가 슬루프, 프리깃 / 플루트, 갤리온이죠. 초반에는 슬루프와 플루트, 두 척 중에 고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선적 문제 때문에 전 플루트만 고르게 되더군요. 플루트는 화물 창고가 3칸인데 반해, 슬루프는 1칸밖에 안되기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없거든요.


이 게임의 테마를 더욱 잘 살려주는 것이 다채로운 카드들이지요.


 그런데 이 게임에 대한 일관된 평이 있는데, 아무래도 약탈자가 상인보다 불리하다는 점입니다. 일단 해적과 해군만 비교해 봐도 그러하긴 합니다. 왜냐하면 해적은 기껏해야 슬루프 아니면 프리깃 함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각국 해군은 프리깃이나 갤리온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만약 현재 전쟁 중인 국가의 해군일 경우에는 막강한 전열함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해군을 만나지 않기 위해 도망다니느라 바빠지지요.


다양한 카드 중에서도 임무 카드는 보상도 주고 승점도 주며,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주지요.


 또 약탈자로 활약을 하고 싶어도 초반에는 상인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각 해역에 떠 있는 상인 마커들을 쳐부수고 다니고 싶어도, 배가 약하면 손상은 손상대로 받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반야님은 처음부터 약탈자로 노략질을 하고 다니겠다고 공언하셨는데, 배가 슬루프라 별 재미를 못보셨거든요. 적어도 프리깃함으로 갈아 탄 후에나, 노략질도 탄력을 받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같은 액션이면 노략질 하는 것보다, 유행품을 3개 이상 파는 게 승점 쌓는 데는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차라리 4개 이상 팔 때 승점 1점이었다면 균형의 추가 더 맞았을 지도 모르지요.


NPC 해적이나 해군들도 이벤트 카드에 따라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게임은 [문화의 충돌]처럼 자신의 턴에 3번의 액션을 할 수 있습니다. 액션은 크게 항구에서 하는 액션과 나머지 액션들로 나뉘지요. 항구에서는 코에이의 "대항해시대"나 시드마이어의 "해적"에서 할 수 있는 액션들은 다 할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선박의 구입/판매/수리/개조(개조는 부품구입과 특수무기 장착, 2개로 나뉨)/화물의 판매/구입/소문 파악하기/선원고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는 이동 액션이 주가 되는데, 항구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도 하나의 이동으로 간주합니다. 해역에서 다른 해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하나의 액션이고, 그 외에 해역에서 상인 마커(그 해역의 중립상인을 의미)를 노략질하거나 다른 선박을 탐색하는 것도 액션입니다.


돈은 공개, 그러나 금고에 들어 있는 돈은 비공개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각 플레이어는 금고를 1개씩 가지고 시작하는데, 이 금고는 기본적으로 모항(母港)에 있다고 가정합니다. 즉, 자신의 모항에 입항해야만 금고에 돈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 금고에 들어간 돈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볼 수도 없고 뺐어갈 수도 없기 때문에 안전한 돈입니다. 게다가 10두카토 당 승점 1점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저축해 두어야 합니다.


영광 카드, 이벤트 카드, 임무 카드, 소문 카드, 화물 카드 등 카드 종류가 많은 게 단점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각 세력을 대표하는 선장들은 각각의 능력치와 특수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해술, 정찰능력, 리더십, 영향력 등의 능력치가 합이 10이 되도록 주어집니다. 항해술은 전투나 이벤트 등 전반적으로 중요한 기술이구요, 정찰능력은 같은 해역에 있는 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즉, 각각의 능력치에 해당하는 수의 주사위를 굴려서 명중 굴림(졸리 로저 모양)이 하나라도 나오면 성공하는 거지요. 참고로 같은 해역에 있어도 정찰에 실패하면 싸울 수도 없고 노략질도 못합니다. 약탈자에겐 중요한 능력이지요. 리더십은 선원 고용이나 백병전에 유리하고, 영향력은 주로 소문 카드를 수집하거나 해결하는 데 유용합니다. 제가 뽑은 선장은 다른 능력은 다 괜찮은데, 영향력이 꽝이라 꽤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작은 배에서 큰 배로 갈아탈 때의 기쁨은 이 게임의 또다른 재미죠.


 참고로 갤리온이랑 프리깃은 35두카토를 내야만 살 수 있는데요, 이 게임에서 35두카토 버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화물을 사거나, 배를 수리하는 등 돈 들어갈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좋은 배로 바꿨을 때는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큐라소 항구에서 갤리온을 주문했는데, 다른 항구랑은 달리 30두카토만 내면 되기에 더 유리했지요. 일단 갤리온만 있으면 화물 칸이랑 대포 칸이 다 4~5칸이기 때문에 상품판매랑 포격전에 유리합니다. 프리깃에 비해서 낮은 기동성이 유일한 흠이지요. 참고로 전열함은 기동성 빼고 전부 능력치가 5입니다. 그리고 전열함은 우리가 주문할 수도 없는 배이기 때문에, 해군함대랑 백병전에서 승리하여 나포하는 방법 외에는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St. John에서 제 함선이랑 심군님의 배가 포격전을 벌이고 있나 보죠?


 일단 카드의 종류도 많고, 그에 해당하는 세세한 규칙이 조금 있는 편입니다. 게다가 전투 관련해서는 규칙이 더 복잡하구요. 포격전이랑 백병전, 도주를 전투 전에 선언한다든지, 그리고 그 후 각자의 항해술 능력치에 상응하는 주사위를 굴려 우위를 결정한다든가 하는 점 등이 좀 복잡하고 어려워요. 처음 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테마 게임들은 테마를 더욱 살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잔규칙들은 용인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메이지 나이트]도 그러했고, [문화의 충돌]이나 [미들어쓰 퀘스트] 모두 그러했지요. 전 그래도 그런 미국식 게임이 유로게임보다 좋아요.


세인트 존에서의 포격전 : 갤리온 vs 갤리온


 그나저나 배를 5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점은 보드게임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대항해시대에서도 한 20종 정도, 시드마이어의 해적에서는 50여종의 배가 나왔는데 말이죠. 기함이 가라앉거나, 나포되면 종종 다른 배를 사서 함대 구성을 달리 하는게 항해 게임의 큰 재미인데 말이죠.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 확장판에서는 새로운 선종(船種)을 추가하긴 했는데, 고작 1종류라서요.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컴포를 조물거리면서 카드를 들고 즐기는 것은 컴퓨터 게임이나 콘솔 게임이 못따라가지요.


주사위의 불운에는 그냥 울지요..


 게임의 종료조건은 누군가 승점 10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턴을 1번씩 더 가지고 게임이 끝나게 되며, 승점을 가장 많이 축적한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거지요. 근데 그 날은 승점 트랙에 나온 승점이 10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여 게임이 5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알고 보니 금고에 들어가 있는 5점도 합산하는 것이더라구요. 그러면 게임이 더 일찍 끝났을 텐데, 에픽 게임으로 돌린 격이 되버렸네요.


브릿지 타운이 프리깃, 갤리온들의 무덤이라죠?


 저는 브릿지 타운에서 노예선 관련 소문만 해결하면 10점에 도달하는데, 2턴 연속으로 실패했었습니다. 심지어 실패해도 정찰 주사위 하나를 다시 굴릴 수 있게 해주는 항해사 카드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금고에 50두카토를 모아놓아서 다행히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의 충돌]과 비교해보면 잔규칙들이 좀 있고 카드 종류도 많아서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해적 테마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적 관련 보드게임 중에 최고인 것 같더군요. 다음에는 확장판인 [영광의 바다]도 같이 집어넣어서 즐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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