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던전 괴물들을 애정을 담아 키워 보아요! |
저번 주에 강서구 모임을 가서 [Dungeon Petz(던전 페츠)]를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블라다 크바틸의 던전 시리즈 후속작으로서, [Dungeon Lords(던전 로즈)]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던전 로즈]에서 2년 동안 애써 키운 던전이 무책임하고 방탕한 모험가들에 의해 박살이 난 후, 살아남은 임프들과 미니언들이 살 궁리를 찾게 되는데요. 거기서 착안한 게 던전 애완동물 가게입니다, 마을 주변에는 그런 가게가 없었기 때문이죠. 임프들의 펫 샵이 가망이 있어 보이자, 다른 던전에서 탈출한 임프들도 연이어 가게를 열게 되지요. 이 게임은 그렇게 문을 연 가게들의 또다른 생존 경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게임은 임가드, 이스케이프님, 저 이렇게 3명이서 진행했습니다.
애완괴물들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반항하거나, 병에 걸리고, 밥 달라고 하며 심지어 똥도 싸야하지요. |
전 이 게임을 보고 있자면, 예전에 유행했던 "다마고치"가 떠오르네요. 포켓몬스터이 아니라, 요즘에는 요괴워치가 성황인 시점에서 다마고치는 청동기 시대 유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요. 그래도 가상으로 애완동물을 보살펴주고, 어렵게 커가는 모습을 같이 지켜본다는 기본 구상은 참 기발한 것 같습니다. 그런 아이디어가 포켓몬이나 다른 애완게임으로 이어졌을 테니까요. 넓게 보면 [던전 페츠]도 "다마고치"의 그늘 아래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던전 로즈]와는 달리 게임 내 언어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아이콘만 보면 돼요. |
블라다 크바틸의 게임을 사랑해 마지 않는 편이지만, 그간 재밌게 즐겼던 게임들은 하나같이 잔규칙이 많고 복잡한 구성이나 진행방식 때문에 처음 하기에는 좀 힘들었습니다. [메이지 나이트]도 그렇고, [던전 로즈]도 게임 설명을 다 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정작 게임은 잘 못하게 되더군요. 그에 반해서 [던전 페츠]는 상대적으로 설명하기가 용이한 편입니다. [던전 로즈]처럼 모험가가 쳐들어 온다든지, 갑자기 나오는 세금 단계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일이 없기 때문이죠. [바니바니 무스]나 [스닉 앤 스니치스] 같은 게임들도 있지만, 이 게임도 생각보다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일꾼배치게임인 것 같아요.
메인보드도 그렇고 게임의 분위기 자체가 [던전 로즈]보다 화사해서 좋더군요. |
게임 박스도 그렇고 메인 보드나 개인 보드, 진행 보드 등이 다 화사한 색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상기한 게임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전작인 [던전 로즈]는 거의 검정 위주의 어두운 색조로 그려져 있기 때문에 좋은 대비를 이루는 것 같네요. [던전 로즈]도 확장판인 [축제의 계절]에서는 새로 축제 라운드를 추가하고, 애완동물 요소도 집어 넣는 등 밝게 만드려고 노력했지만, [던전 페츠]에는 당할 수 없네요.
애완괴물을 키우는 우리들입니다. 현재는 스내피 1마리밖에 없네요. |
게임은 5~6라운드로 구성되는데, 4인이면 5라운드, 2~3인이면 6라운드입니다. 이 날은 6라운드로 진행했는데요, 게임의 진행은 개인보드의 아이콘을 보고 진행하면 됩니다. 이 점은 [던전 로즈]랑 똑같네요. 큰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장 보기 단계를 통해서 애완 괴물과 그들을 가둘 우리를 사옵니다. 그렇게 사온 애완 괴물들은 각각 바라는 바가 틀린데, 그에 해당하는 요구카드를 뽑고 괴물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요구를 해결하지 못하면 불행해지거나, 변이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가출하거나 죽을 수도 있지요. 가출하거나 죽으면, 마지막 라운드에 각각 총점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벌점을 받기 때문에 타격이 은근히 큽니다. 이 날은 이스케이프님이 가출 벌점을 5점 받았습니다.
펫들은 기호에 따라, 그리고 연령별로 요구조건이 다릅니다. 하단의 스테고불리는 적색 요구만 있네요. |
이 게임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펫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선 요구 카드는 4가지 종류가 있는데, 초록색(배고파 요구 위주), 붉은색(화났어 요구 위주), 노란색(놀아줘 요구 위주), 보라색(마수리 요구 위주)이 있습니다. 개인 보드의 위쪽 중앙 부분을 보시면 각 요구카드별로 요구들이 어떻게 분포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 요구카드의 경우 배고파 요구가 50%를 차지하고, 똥쌌어, 화났어, 아파 요구가 그 다음을 잇고 있네요. 다마고치 모양의 펫을 살 때, 현재 요구의 종류와 양, 그리고 앞으로 나올 요구의 내용을 보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2마리 이상의 펫을 가지려고 할 때는 우선 비슷한 요구를 가진 애완괴물들을 모아서 덱 운용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의 2마리 펫들, 스내피(우상단)와 스테고불리(우하단) 모두 붉은색과 초록색 요구만을 가지기 때문에 맞춰서 가기가 편한 점이 있지요.
중앙 보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약간 서커스장이나 테마파크 분위기가 엿보여요. |
펫이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많은 요구들을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키우기가 버겁게 됩니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에 전시회에 내보내고, 던전의 고객들에게 분양을 해야 합니다. 근데 펫들은 최소한 4레벨 이상이 되어야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요구를 들어주고 잘 달래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잘못 키워서 좀 불행하거나, 변이가 일어났다거나 우리에 똥거름이 가득한 펫들은 고객의 기호에 따라서 감점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펫 중에서 미니 골렘만 안팔렸네요. 저 미니 골렘이 성장하면, [던전 로즈]의 골렘이 됩니다. |
그런데 펫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쉽지가 않아요. 우선 자원의 한계로 인한 선택의 문제가 항상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장 보기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액션의 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3인이라 NPC를 두고 진행하는 것도 자원을 더욱 제한하고 있지요. 다만, [던전 로즈]처럼 임의로 NPC가 활동하는 게 아니라 트랙을 돌아가며 진행하기 때문에 예측이 더 쉬운 점은 있습니다. 아무튼 펫들의 요구에는 그에 맞는 우리나 우리의 부착물을 구입하든가, 아니면 식량이나 임프들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펫들의 요구에 앞서가는 전략을 세워서 움직여야 합니다. 안그러면 불행 토큰을 왕창 모인 우울하기 그지없는 펫을 기르거나, 똥거름 가득한 우리를 안고 있어야 하지요.
펫들을 그에 맞는 우리에 가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놀기 좋아하는 미니 골렘은 사실 지금 있는 우리도 괜찮지만, 왼쪽의 우리가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반면에 스테고불리는 딱 알맞은 우리에 있는 것 같네요. |
전 이 게임을 하다 보니까, 체코 게임즈의 다른 게임들이 떠오르더군요. 하나는 계속 언급하고 있는 [던전 로즈]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입니다. 불행 토큰만 해도 [20세기]에 쓰이는 오염 토큰이랑 똑같구요, 펫들의 불행이나 똥거름들을 관리하는 게 [20세기]의 진행방식이랑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특히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진행 보드 상의 고객 타일이나 전시 타일을 매 라운드 시작시에 미리 공개한다는 점도 그렇구요. 다음 라운드에 뭐가 필요한지를 모두 공개적으로 알고 준비한다는 점은 [20세기]의 그것과 같네요. 임프와 돈을 합친 방법으로 장 보기 액션의 순서를 결정하는 점도 똑같구요.
게임이 진행될 수록, 내가 공들여 키운 펫들이 전시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거나 잘 팔려나가는 걸 보는 것도 또다른 기쁨입니다. |
그렇게 공개된 전시 타일의 요구조건에 맞춰서 전시 단계에 콘테스트를 진행하는데요, 여기서는 그 전에 해결한 펫들의 요구카드를 보고 전시 점수를 결정합니다. 펫 1마리만 나갈 수도 있고, 우리에 있는 모든 펫들의 요구카드를 보고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펫에 변이 토큰이나 불행 토큰이 붙어 있거나, 우리에 똥거름이 있거나 하면 감점을 받을 수 있단 거지요. 이건 던전의 고객들에게 펫들을 팔 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입니다. 펫들의 마지막 요구들을 들어주기 위해 요구카드를 정하는 것 같네요. |
이제 판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상술했듯이 판매도 전시랑 비슷합니다. 다만, 1명의 고객에게는 1마리의 펫밖에 팔 수가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라운드인 6라운드에는 2명의 고객이 있고, 3라운드부터 팔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5마리까지 펫들을 팔 수가 있지요. 이 게임에서 승점은 라운드 종료 전까지는 오직 전시와 판매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점수를 얻으려면, 부지런히 펫들을 키우고 팔아넘겨야 합니다.
이번 게임 동안 제가 공들여 키우고 분양한 펫들입니다. 위에서부터 스내피, 미니 골렘, 크툴리, 파이어리 페리, 스테고불리입니다. 모두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가요? |
[던전 페츠]는 [던전 로즈]나 [메이지 나이트] 등 블라다 크바틸의 다른 게임들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갤럭시 트러커]나 [픽토매니아]도 그러하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던전 테마라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물론 가볍다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긴 합니다. 아무리 가벼워도 다른 일꾼배치 게임인 [로즈 오브 워터딥]이나 [케일러스]보다야 더 복잡하고 잔규칙도 많으니까요. 이 날 같이 했던 이스케이프님은 조금 어려워하시더라구요. 크바틸 게임 좋아하시고, 일꾼배치 게임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확장판인 [어두운 복도]도 기대가 되네요.